내 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UNPKO

ᄋ 이름 : 최경헌 ᄋ 근무기구 및 부서 : 유엔 남수단임무단(United Nations Mission In South Sudan) 대한민국 남수단재건지원단(한빛부대) 11진 ᄋ 직위/직급 : 작전지원대 공보정훈병 ᄋ 지원 경로 : 육군 평화유지군 선발계획 ᄋ 근무 기간 : 2019.5.13.-2020.3.24.

수기를 시작하며 먼저 쉽지 않은 파병 기간을 함께해준 남수단재건지원단 11진 부대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타지에서 모두가 고생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더 많이 챙겨주지 못해 아쉬움이 남고 죄송하기도 하다. 함께할 수 있었기에 더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버틸 수 있었다. 더불어 아프리카 남수단이라는 낯선 땅에서 국가를 위해 복무할 수 있게 평화유지군으로 선발해주신 대한민국 육군 관계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남수단재건지원단의 일원으로 선발되지 않았다면, 9개월의 값지고 특별한 경험을 절대 얻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경험과 다양한 국적, 직책,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는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내가 인식하는 세상이 더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 이바지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유엔의 일원이 되는 경험은 그만큼 내 삶에서 커다란 사건이다. 이 글을 통해 누군가가 군 복무 기간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된다면 좋겠다. 군 복무 중 가치있는 도전을 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아프리카 남수단의 참혹한 현실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많아져서 더 많은 분의 도움의 손길이 그곳에 닿았으면 한다.

선발절차와 출국 대한민국 육군은 정기적으로 전국에서 간부와 병사를 남수단재건지원단의 일원으로 선발하고 있다. 인트라넷을 통해 선발 공고를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주특기에 맞는 직책에 지원할 수 있고, 선발규모는 병사가 훨씬 적다. 남수단재건지원단의 일원으로 선발되면, 인천에 있는 국제평화지원단으로 소속이 변경되고, 약 두 달간의 교육을 받게 된다. 교육과정에서 체력 측정을 비롯한 기초적인 교육이 시행된다. 평화유지활동, 현지 환경, 주특기 관련 교육이 이뤄진다. 아프리카 남수단에 말라리아 등 전염병이 있어서 위험하기 때문에 예방접종도 받는다.

교육이 끝나고 관용여권 발급 등 필요한 절차를 마치고 군 공항을 이용해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향한다. 에티오피아를 거쳐 남수단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험난한 여정이다. 체력적으로 부담될 뿐만 아니라 찌는 듯한 더위가 고통스럽다. 주둔지에 도착한 뒤에는 약 한 달간의 안정 기간을 보낸다. 근무시간, 기념일, 휴무일은 모두 유엔의 방식을 따른다. 다른 나라 파병부대에 방문하는 날에는 새롭고 다양한 문화를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다. 네팔전투경찰대(NFPU) 주둔지에서 경험한 네팔의 전통 명절 더싸인(Dasain)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국제평화지원단에서 다시 만난 유엔 나는 평화유지군으로 선발되면서 국제평화지원단에서 국제기구를 비롯한 유엔의 평화 유지활동(UNPKO) 전반에 대한 개괄적인 교육을 받았다. 국제기구는 생소했다. 고등학교 수업에서 법과정치를 공부할 때 이론적으로만 배운 것이 전부였다. 유엔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평화, 안보, 인권이다. 이 중 인권에 가장 높은 가치를 둔다. 유엔은 193개국이 참여하는 총회, 안전보장 이사회, 사무국, 국제사법재판소와 각종 이사회로 이뤄져 있다. 세계 평화를 위한 넓은 범위의 활동을 추진하기 때문에, 유엔을 구성하고 있는 국제기구도 다양하다.

UNPKO는 최소한 당사국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동의, 공정성, 무력사용금지라는 기본 원칙 하에 평화유지활동이 실행된다. 성공요소로는 적법성, 신뢰성, 당사국과 지방의 주도권 신장이 있다. 어려운 교육 내용이었지만 얻은 것은 많다. 국제기구에 대한 지식수준도 깊어졌다. 또한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UNPKO의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9개월 간의 파견기간 동안 더 깊어져 지금까지도 ‘도움을 주는 행위’에 대한 나의 가치관으로 남아있다.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향하다 빛나는 도시의 야경, 자동차들이 뒤엉켜 시끌벅적한 도로. 우리나라와 약 14,000km 떨어진 남수단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밤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오고, 도로는 평탄하지 않아 그 위를 지나가는 소형전술차량은 심하게 흔들린다. 인터넷이 느려지거나 끊기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빛, 도로, 통신시설은 이곳에서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한국과는 달리 언제든 위험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유엔 남수단임무단 대한민국 한빛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어린 신생독립국가, 아프리카 남수단이다.

남수단은 수십 년간 지속한 내전 이후 2011년 7월 9일 수단에서 분리 독립했다. 오랜 내전으로 황폐해진 이곳에서 심각한 기근과 전염병 속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 남, 북으로 분단되어 정전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남수단은 부족 단위로 구성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 간 교류와 소통 없이는 분쟁이 일어나기 쉽다. 이 분쟁이 확대되면 내전으로 번질 수 있다. 유엔은 남수단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재건을 돕기 위해 유엔남수단임무단(UNMISS, United Nations Mission In South Sudan)을 설치했다.

남수단을 비추는 환한 큰 빛, 한빛 반기문 前 유엔사무총장은 2011년 7월 26일 대한민국 정부에 파병을 정식 요청했다. 2012년 9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군부대의 국제연합 남수단 임무단 파견 동의안’이 최종 통과됐다. 한빛부대는 2013년 1월 7일 창설되었다. 한빛부대는 도로재건작전을 통해 종족 간 화합을 증진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대동맥을 건설하고 있다. 더불어 한빛부대는 의료지원, 직업학교, 한국어 교실, 태권도교실 등 민군작전도 수행하고 있다. 유엔으로부터는 ‘최고의 모범부대’, 남수단 주민들로부터는 ‘신이 내린 축복’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 당연한 것들은 남수단에서 감사한 것들이었다 난생처음 가본 아프리카는 매우 더웠다. 낮에는 온도계 40도 부근까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9개월간 타지에서 평화유지군으로 임무 수행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출발하기 전에는 낯선 땅과 새로운 경험에 대해서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직접 가본 남수단은 달랐다. 열악한 여건이 몸소 느껴졌다. 남수단으로 가는 길도 험난했다. 내가 도착할 때는 우기였는데, 비가 어찌나 많이 오던지. 힘겹게 매고 가던 배낭과 보조가방이 다 젖었다. 이곳에서 긴 시간 동안 잘 지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저벅저벅 걷다 보니 어느새 주둔지에 도착했는데, 그때의 감격스러운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마을로 나가면 위생적이지 못한 환경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땅이었다. 남수단의 토양은 레드머램이라는 재질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비가 오면 배수가 잘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홍수로 이어져 비가 오면 남수단의 마을은 물에 쉽게 잠긴다고 한다. 도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 걷는 와중에도 땅이 푹푹 꺼져 중심을 잡기 어려운 그곳. 남수단이었다. 한국에서 당연한 것들은 남수단에서 감사한 것들이었다.

남수단재건지원단 공보과의 특별한 역할 한빛부대 공보과의 역할은 특별하다. 공보과가 제작한 부대 소개영화는 유엔 관계자, 대사 등의 외부 인사 방문 시 한빛부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파병국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교실에서 교관으로 활동했다. 나는 한국어교실을 위한 교육 영상도 제작했다. 남수단재건지원단 11진 공보과의 역할은 일반적인 임무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래서 매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종글레이주 미라야 라디오국을 방문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곳은 유엔 평화유지활동 관련 뉴스를 라디오를 통해 송출하고 있었다.

남수단에는 통신시설을 비롯한 제반시설이 열악해, 모든 공적인 보도를 라디오로 해결하고 있었다. 미라야 라디오국 내부도 많이 훼손된 탓에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할지 의심되는 상태였다. 한빛부대는 남수단 현지 주민들과 유엔의 소통 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유엔 공보과에서 출판한 『A Shared Struggle: The People & Cultures of South Sudan』이라는 제목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현실을 몸소 느낄 수 있었고, 국제기구의 역할에 대해, 남수단의 현실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