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CSD·Christopher Street Day)’는 성적소수자의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자리다. 저항 의식이 담긴 집회이지만, 분위기는 즐겁고 가볍다. 클럽에서 들을법한 음악이 들리고, 참가자들은 춤추며 거리를 행진한다. 주택가를 지날 때면 주민들이 창문을 열고 이 인파를 환영하기도 한다. 이 기간에 중앙역, 시청사, 교회와 같은 도시 주요 장소에 무지개 깃발이 걸린다.

역사상 첫 CSD는 1969년 6월 뉴욕에서 열렸다. 경찰의 동성애 억압에 대항한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동성애는 미국에서 범죄로 규정되어 있었고, 미국 뉴욕 크리스토퍼가에 위치한 ‘스톤월 인(Stonewall Inn)’은 동성애자들의 모임 장소였다. 이곳이 뉴욕 경찰의 급습을 받는 일이 잦았는데, 수천 명의 사람들은 이에 대항하여 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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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다름슈타트 CSD 현장에서 한 집회참가자가 무지개깃발을 들고 있다. -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이후 CSD는 미국 이외 지역에서도 소수자의 권리 향상을 위해 열리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유럽에서 6월은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라고 불린다. 독일 CSD는 1979년 베를린에서 최초로 열렸다. 이후 독일 각 도시에서는 매해 여름 CSD가 개최된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정당, 시민단체, 기업 등 다양한 주체가 참가한다.

독일 연방의회는 2017년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당시 동성혼 합법화 법안은 찬성 393표(62%), 반대 225표(35%), 기권 4표(0.6%)로 통과됐다.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독일 기본법(한국의 헌법 개념)상 혼인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는 이유로 해당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면서도 “동성혼 합법화는 더 많은 사회적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80%에 가까운 독일 국민들이 동성혼 합법화를 찬성했다.

이때 메르켈이 소속되어있던 기독교민주연합(CDU)과 바이에른기독교사회연합(CSU)이 결성한 원내 교섭단체 309명의 의원 중 225명(72%)이 이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의회 내 진보세력으로 분류되는 사회민주당(SPD), 좌파당(Die Linke), 녹색당(Die Grüne) 내 반대표가 나오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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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U는 대형 차량을 동원해 2023년 프랑크푸르트 CSD에 참가했다. -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그 CDU가 CSD 현장에 나타났다. CDU는 대형 차량을 동원해 무지개 물결 행진에 합류했다. 지난해 7월 15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CSD에는 경찰 추산 1만 3천여명, 주최 측 추산 1만 5천여명의 인원이 참가했다. 당시 행사는 ‘Here & Queer (여기 그리고 성 소수자)’라는 슬로건으로 개최되었는데, ‘엘지비티아이큐(LGBTIQ)’로 불리는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아직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범죄가 만연한 독일에서,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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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D는 저항의식이 담긴 집회이지만 비장한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일반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CDU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보수정당의 CSD 참여는 실질적 행동 의지 없이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듯 기업 또는 정치조직을 홍보하는 ‘핑크워싱(pinkwashing)’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CSD에 참가한 스벤냐 한젠(Svenja Hanse)(24)씨는 “CDU는 수년간 이 행사에 참여했다. 그들은 성적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며, 실제로 독일 의회에서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정당“이라며 “그들의 CSD 참가에 매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당의 인식을 개선하고, 표를 얻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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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다름슈타트 CSD에서 한 참가자가 ‘viel sehr bunt(매우 많이 다양한)’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독일 유명 일간지 Taz는 지난해 함부르크 CSD에서 주최 측 결정으로 CDU에 대한 초대가 취소된 사건을 전했다. CDU 내 성적소수자 모임(LSU) 대표 토마스 톰슨(Thomas Thomsen)은 “CDU의 함부르크주 의장 데니스 테어링(Dennis Thering)은 메르텐스(Mertens)의 발언과 거리를 두고 있다. CDU의 다른 의원은 LSU의 요구를 받았음에도, 이렇게 거리를 두고 있지 않다.”라고 밝혔다. 함부르크 지역 한 일간지 대변인 자비네 메르텐스(Sabine Mertens)는 “우리 모두가 지금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가 되어야한다면, 진화는 끝난 것”이라고 언급했다가 발언이 논란이 되자 정정했다.

CDU의 집회 참여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다. 토마스 톰슨은 “때때로 그것은 더 어려운 투쟁이다. 그래서 CDU의 구성원이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에 참가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참고문헌

taz (2024년 4월 2일). Hamburgs FDP laviert beim Gendern, https://taz.de/Streit-um-Sprache-der-Verwaltung/!5925579/